산사진 마니아 이백휴/디지탈타임즈/2007년

'덕유산의 사계' 그 끝이 없더라
빛과 날씨따라 변화무쌍
시시각각 다른풍경 매력
금요일 밤이면"산으로…"

쌓인 업무로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야근에 온갖 회식자리, 여기에 퇴직에 대한 불안감으로 긴장 속에 일주일이 흘러 금요일 퇴근 시간이 되면 직장인들은 하나둘씩 처진 어깨를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흔히 접하는 커피와 담배의 찌든 냄새는 이 시대 우리 직장인의 모습이며 바로 나의 자화상이다. 주말 내내 잠을 청해도 왜 이리 피곤한지. 월요일 아침이면 이 생활이 또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이같은 지루한 일상을 떨쳐내고 주말이면 평소보다 몸을 더 혹사(?)시키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직장인도 많다. 주말시간을 모두 잠을 자는 것에 할애해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 직장인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자신을 즐기는 직장인들은 하나같이 주말을 어떻게 보내냐 하는 `휴(休)테크'가 한 주를 결정짓는다고 입을 모은다.

금요일 퇴근 무렵이면 등반 중무장을 하고 덕유산을 올라 일요일 저녁에야 내려오는 LG화학 익산 총무팀의 이백휴(47)씨. 그는 벌써 18년 넘게 덕유산에 빠짐없이 주말을 반납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월요병이란 없다. 월요일 출근하기 무섭게 직장 동료들에게 덕유산의 계절변화를 그림 그리듯 들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쉼 없이 쏟아내는 폭발적인 그의 에너지 때문에 다른 직원도 덩달아 활력을 얻게 된다고 한다.

그가 산에 남다른 애정을 갖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나이에 현실을 그대로 담는 사진 매력에 푹 빠졌고, 수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으로 당시 고가의 수동카메라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전국 이곳 저곳을 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모조리 셔터를 눌러댔지만, 산 사진을 경험한 후로는 그 장엄함을 잊을 수가 없어 온통 산 사진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특히 많은 산 가운데 덕유산만 고집하고 있는데, 덕유산은 능선이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어 빛의 방향이 좋고 극렬한 날씨변화로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담을 수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산 사진은 전문적인 등반수준과 사진기술을 갖춰야하는 것은 물론 30∼40kg에 육박하는 장비들을 메고 다닐 수 있는 체력 또한 필수다. 산 사진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만, 마음처럼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씨는 이러한 도전조건 때문에 오히려 산과 사진에 대한 사랑이 더 커졌고, 이를 극복하는 성취감이 오랫동안 자신을 산으로 이끌고 있다고 했다.

산과 사진. 이 것 외에 그에겐 또 하나 열정을 쏟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오랫동안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궂은 날씨로 위험에 처한 등산객을 자주 만나게 됐다. 처음에는 추위로 고생하는 등산객을 우연히 도와준 것으로 시작된 일이 이제는 산 사진과 더불어 빠질 수 없는 주말의 일과가 됐다. 사진과 아마추어무선통신(HAM)을 취미생활로 삼고 하는 그는 등산할 때면 카메라와 함께 꼭 챙기는 것이 바로 무전기라고 한다. 그는 실제 겨울철 저체온증으로 저승 문턱까지 간 사람들을 해마다 두 세명씩 살려냈다고 했다.

그는 이미 산 사진에 대해선 아마추어라고 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있다. 2001년에 첫 개인 전시회를 열었고, 2006년에도 국내 처음 덕유산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에는 아마추어 작가의 지방 전시회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고 한다. 전시했던 30여점 가운데 대부분은 일반인에게 판매됐고, 일부는 사진 전시회에 이골이 났을 것 같은 주최측 예술회관 직원에게 팔리기까지 했다. 그는 전시회를 여는 것은 주말을 함께 하지 못했던 남편과 아빠를 이해해 준 가족에게 감사를 표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dukyusan.com)를 한 번 방문해 보라. 그의 사진을 보고, 그와 몇 마디 나눠보면 당장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산으로 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것이다.

"남들이 산에 오르기 꺼리는 악천후가 나에겐 즐거움이었고, 남들이 깊이 잠든 밤에도 나의 촬영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가 주말에 방 구들장을 붙잡고 있는 직장인들을 깨울 듯 하다.

디지털타임즈 김승룡기자 srkim@